장미 한 송이 사실래요?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영국에 가면 RHS (왕립 원예협회) 가든이나 플라워 (혹은 가든) 행사에 가급적 들리는 편입니다. 보잘 것없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이 분야에서 가장 전문적으로 알아보고 해당 루트를 소개하는 유학원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죠.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가든 축제에서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문화가 부러워서이기도 한 것같습니다. 날씨와 상관없이 어린 아이들의 고사리같은 손을 잡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노부부가 화사하게 피어난 꽃 앞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리고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온 꼬맹이들에게 전담 선생님들이 여러가지로 숲과 나무, 벌과 “벌레”들을 보여주는 것들을 볼 때면, 여러이들에게 “정원”(가든)이란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삶의 하나라는 생각이 깊게 들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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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스트리 (꽃꽃이, 화훼장식) 유학을 가는 분들을 많이 보다보니 슬쩍슬쩍 관심이 가는 분야 중의 하나가 원예쪽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좀 덜합니다만, 일때문이든 취미때문이든 꽃 시장도 다녀보고 가끔은 사무실에 꽃도 꽂아보기도 하죠. 한국의 플로리스트리나 꽃관련 산업은 잘 모릅니다만 먼발치에서 본 느낌은 “향기가 적다”는 것입니다. 가든쇼에서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새롭고 다양한 품종, 그리고 직접 가든에 심어보고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한국에서는 낯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단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다양한 모양의 돌담과 꽃나무들이 한국에서는 비교적 흔하지 않아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제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실제 꽃에서 나는 향기도 유럽에서의 꽃과 한국 꽃시장에서 만난 꽃들은 차이가 크게 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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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왕립원예협회를 방문했을 때, 메인 주제는 “지역사회와 연계된 정원이나 원예 관련 교육”이었습니다. 스스로도 주제를 왜 그렇게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 스스로 ‘내가 아쉬웠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지요. 1년에 고작 몇 주밖에 가보지 못하는 RHS (왕립원예협회) 연간 회원권을 구입해서 정원을 방문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연간회원권 없이도 실비로 정원들을 방문할 수 있으니 연간회원권은 사실 손해니까 말이죠. 그도 아니라면 어쩌면 잘 보지도 못하는 책자라도 받아보고, 이메일에 가끔 눈길이나 주는 것만으로 대리 만족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였나요, 유독 꽃을 판매한다는 기사에 눈이 가고, 가족단위 직당단위 학교단위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소개받을 때마다 한번씩 들어가보게 되는 것이 말이지요.

예전에 조경일을 하는 친구가,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구조물을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여러 행사에 참가해보고 정원들을 돌아다녀보면서 점점더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더군요.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우리에게 정원문화, 꽃과 관련된 산업은 하나의 문화가 아니라, “교양있는”, “트랜디하고”, “여유가 있다는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가성비”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듯, 정원이나 꽃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너무 기능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같은 가격이면 오래가는 조화나 “드라이플라워”를 선호하고, 비누로 만들기도 하는 등 실제 살아있는 가치에 대해 좀 둔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이어지네요…

뭐…. 문득 건져올린 메일 하나를 통해 주절거려 봅니다. 살아있는 꽃을 죽여야한다는 것이 싫어서 꽃꽃이를 그만두었다는 어느 어머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살아있는 것는 순간을 함께 기뻐해주고 그 순간의 가치를 오래오래 이어가게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나봅니다. 스산한 겨울 하늘위에, 맑다못해 추워보이기까지한 보름달을 보다가 갑자기 꽃 생각이 났었나보네요.